중앙일보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석좌교수
입력: 2025.08.13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소양(반공) 교육을 받던 때로 기억된다. 반공 의식을 고취하려고 틀어준 영상은 김일성대 정문을 걸어 나오던 여대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이들에게 기자가 다가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다. 당연히 “김일성 수령님 같은 멋진 남성”이라고 답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답은 달랐다. 아니 아예 답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며 웃기만 했다. “아,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아무리 정권이 빨갛게 만들려고 해도 빨갛게만 변할 수 없는 게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반공 교육은 인간과 체제에 관한 강렬한 질문만 남겼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나는 동안 지적인 호기심은 학문적 의심을 거쳐 ‘인간은 체제보다 강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카를 마르크스는 반대로 생각했다. 인간성이란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인 경제체제가 결정하므로 계급투쟁이 없어지는 사회주의에서는 이기심이 사라지고 이타적 인간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도 가난에 시달리면서 일찍 죽은 아들의 관조차 사지 못하자 극도로 괴로워했던 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생존하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려 한다. 부모는 자식을 지키려 생명을 다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는 자유롭게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마저 허락하지 않는 체제는 미래가 없다. 거대한 권력은 작은 개인을 짓밟을 수 있겠지만, 생존과 자유, 존엄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은 장기적으로 어떤 지배 질서보다 질기고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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