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포럼 The Seoul Forum for International Affairs(SFIA)

국문/KOR

[외교안보•정치] [홍석현 회원] "복합 대전환기 -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찾아서" 中 서문 (2022.01.20)
Date: 2022-01-20

 

지금 한일관계는 중증 복합골절 상태입니다. 위안부, 강제징용이라는 과거사의 장벽에 갇혀 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서 최악의 냉각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두 나라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입니다. 기존과는 다른 독창적(out-of-box)이고, 전방위적 차원의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결단입니다. 프랑스의 드골, 독일의 아데나워 같은 대범하고 열린 사고가 필요합니다. 드골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포로가 됐고, 2차세계대전 때 나치 침략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소련에 굽히지 않고 프랑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놀랍게도 적이었던 독일과 손을 잡았습니다.

드골은 아데나워와 4년간 15번 정상회담을 가졌고, 40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독일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유창한 독일어로 “독일 만세! 프랑스-독일 우정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결과 1963년 독일과 프랑스는 영구적 화해협력을 약속한 ‘엘리제 조약’을 맺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사건건 대립했고,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피흘리며 싸웠던 두 나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까운 친구가 됐고, 유럽연합(EU) 탄생의 원동력을 만들어냈습니다.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두 나라의 오랜 적대와 갈등을 일거에 해소한 아시아판 ‘엘리제 선언’이었습니다. 선언의 바탕에는 상대의 존재가 나의 생존을 위해 없어선 안되는 존재가 됐다는 상호존중의 정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 반일, 혐한 정서가 압도하는 지금은 “일본 없는 한국, 한국 없는 일본이 더 편하다.”는 위험한 착각과 환상이 두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협력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슈라도 바로 실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현상유지(status-quo)보다는 ‘보트를 흔들어야 할(Rock the boat)’ 시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가 국경선에서 멈춰서야 합니다. 한일관계가 급전직하한 전환점은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외교부 장관과 외교안보수석을 마지막 결정과정에서 배제하고 결정한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이제 볼은 우리코트에 있습니다. 내년에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 일본을 견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취하면 일본도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지도자 간에 소통이 시작되면 디테일은 실무자들의 협상을 통해서 풀어가면 됩니다.

그렇다고 집권 초기에 전세계가 당선인,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상대국의 입장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놓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말한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의 지혜를 되새겨야 합니다.

일본이 보상금을 거부한다면 돈은 우리가 내고 일본 지도자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면 됩니다. 우리는 미래의 큰 비전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993년 4월 김영삼 대통령의 해법이 양국과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협력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미중 경쟁의 격화, 중국의 부상은 양국이 외면할 수 없는 엄중한 현실입니다. 일본에서는 ‘소사이어티 5.0’으로 부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양국은 첨단 기술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5대 기술 강국은 미국‧중국‧한국‧일본‧독일입니다. 양대 축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동북아의 강자인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유럽의 강자 독일을 끌어들이면 기술의 제3축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가 기술로드맵 작성, 국제 표준, 발명특허와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 폭넓게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일본기업은 막강한 정보력과 그물망 같이 치밀한 금융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합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는 과감한 투자는 오너십이 있는 한국 기업이 더 잘 합니다. 마케팅 분야도 한국에 강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한일협력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한일 두 나라는 모두 위협적인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습니다. 고령화, 저출산, 부동산, 교육, 복지, 노동의 문제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가속화되는 인구감소로 두 나라와 동남아를 합친 규모의 경제권을 만들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에 종속되고 말 것입니다. 한일 FTA가 가장 빠른 길이지만 일본이 가입하고 있는 CPTPP에 한국도 가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일관계가 ‘잃어버린 10년(one lost decade)’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한반도에만 매몰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고질적 문제입니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두 나라 모두 반일과 혐한의 감정을 극복하고 양국관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중경쟁의 구도속에서 두 나라가 외교 안보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지정학(地政學), 글로벌 생산 및 공급 네트워크의 지경학(地經學), 국제적 첨단기술경쟁구도의 지기학(地技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일관계가 제대로 풀릴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로 양분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나라들의 힘이 부치니 미국과 힘을 모으는 것은 기본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운명적 과제입니다.

미국은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가 한국방위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때 공산군의 침략을 낙동강에서 저지하고 적화통일을 좌절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가 병참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중재로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됐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기성세대를 능가하는 20,30대 젊은이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낡은 유산인 복잡하고 갈등적인 한일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한류(韓流)와, 일류(日流)를 아무 저항감 없이 즐기고,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양국 젊은이들이 한일 관계의 미래를 마음껏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미래세대의 협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다층적 네트워크가 절실합니다.

2020년대는 대전환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시기입니다. 미중격돌, 4차산업혁명, 인구절벽의 가시화, 북한의 핵무장, 한 세기만의 팬데믹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가 현실적, 협력적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양국의 지도자들이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할 때입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 법입니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미래의 주인공이 됩니다. 더 이상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홍석현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Copyrights and Contact details

  • Seoul Forum
  • 주소 03737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23 풍산빌딩 3층
    TEL. 82-2-779-7383 FAX. 82-2-779-7380 E-Mail. info@seoulforum.or.kr
    개인정보처리방침   국세청
    Copyright © 2018 The Seoul Forum for International Affairs. All Rights Reserved.

Display page loading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