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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정치] [홍석현 회원]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 中 서문
Date: 2022-09-02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 서문

 

한국과 중국이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미래를 위해 손을 잡은 지 벌써 한 세대가 흘렀습니다. 『논어』의 ‘삼십이립三十而立’은 서른이 되면 독립적이고 자각적 의식을 가지고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세월을 성찰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한중 양국은 다층적이고 전방위적인 교류를 통해 많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46차례에 걸친 한중 정상회담과 고위급 소통채널을 가동했고,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직전까지 매년 1000만 명의 인적교류를 통해 민간의 상호이해를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이 두드러져 2021년에는 교역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당신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당신이 있다你中有我 我中有你’는 말이 실감납니다.

한중 수교로 선린우호관계를 맺은 이후 양국의 외교형식도 꾸준히 격상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한솥밥을 먹는다’는 ‘훠반伙伴’, 즉 동반자partnership관계가 되었고 2008년 이후 지금까지 높은 수준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자 차원을 넘어 지역과 글로벌 이슈에서, 단기적 현안을 넘어 장기적 사안에서, 그리고 경제 뿐 아니라 안보적 차원에서도 폭넓게 협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천하는 늘 태평하지 않다”는 말처럼 오늘의 한중 관계는 ‘다음 30년’을 낙관만 하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는 오랜 냉전구도가 해체되는 시대흐름에 올라탄 양국 지도자의 결단, 국민의 간절한 바람과 노력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북방외교를 통해 외교적 지평을 공산권까지 확장하고자 했고, 중국도 천안문 사건 이후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개혁개방 총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 선생의 혜안과 지도력이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중 수교를 가능하게 했던 ‘탈냉전’과 지구화라는 세계사의 흐름이 퇴행하고 있습니다. ‘신新냉전’, ‘디커플링’, ‘반세계화’와 같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면서 어렵게 건설한 지구촌이 새로운 진영 대결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어 두 나라 사이에 낀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한중 수교가 탈냉전이라는 순풍을 타고 돛을 올렸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냉전의 부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약 200년 전인 1820년 세계 인구는 10억명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인구는 세계인구의 36.6%로 서유럽 국가 전체를 합친 12.8%의 거의 세배에 달했습니다. 당시 중국의 세계 GDP 비중은 32.9%로 서유럽의 23.6%를 능가했습니다. 중국은 당시에 이미 세계국가였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몽中國夢도 아편 전쟁 이전에 번성했던 세계질서를 꿈꾸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중국의 부상이 단순히 신흥 강대국의 출현이 아니라 문명국가이자 세계국가였던 중국의 부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선생이 생전에 “중국의 부상이 꼭 조용하게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는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따른 종합국력의 확대는 한중 관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이익을 둘러싼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중 관계 외부의 제3자 요소인 한미동맹, 북핵문제, 한미일 안보협력, 공급망 재편 등이 본격적으로 양자관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마찰음이 커지고 긴장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양국의 핵심이익을 둘러싼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지 못하면서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실정입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북핵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7차 북핵실험이 예고되는 등 상황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치적 갈등을 완화시켜왔던 경제·산업 영역조차 상호보완성 보다는 경쟁성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회의론도 등장했습니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자국에 대한 자부심에 바탕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민간 감정이 악화했습니다. 특히 한중 양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할 젊은 세대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벌어지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30년’을 생각했을 때 걱정되는 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한중 수교 30주년에 대한 평가로 ‘절반의 성공’이라는 인색한 평가도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 전에 한중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중 수교 이후 30년을 맞이하는 지금 “초심을 기억하자” 또는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자”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서양 격언에도 “우물이 마르면 비로소 물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30년전 한중 수교로 어렵게 만들어진 귀중한 우물이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도록 소중히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위기보다는 기회를 모색할 때, 한중 간 어려운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긍정의 에너지’라는 의미의 ‘정능량正能量’을 믿고 싶습니다. 비관론자는 어떤 기회가 찾아와도 부정적인 문제만 들춰내면서 낙담합니다. 하지만 낙관론자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실마리를 찾아 기회의 창을 열어 나갑니다.

한중 양국은 지정학地政學, 지경학地經學, 지문화적地文化的으로 깊이 연결되어,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입니다. 동양의 선비들이 기개의 상징으로 간주한 대나무가 높고 곧게 자라는 것은 단계마다 마디를 다지면서 위로 오르기 때문입니다. 다음 수교 30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마디짓고 새롭게 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중국인과 맺은 성공의 기억과 경험은 지난 30년간의 한중 관계 발전이 허업虛業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활용하면서 “상대에 동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본래 정신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중 간 ‘다음 30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외교·안보·경제·사회·문화·환경 각 분야에서 수교의 초심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한 협력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팬데믹에 대처하는 방역, 기후 변화 등 양자관계 차원을 넘어선 초국가적 협력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反지구화의 흐름도 인류 공동체의 반성에 따라 결국에는 퇴조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중 협력도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한 번에 좋아지고 풀리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중 수교의 씨앗으로 1983년 5월에 있었던 ‘중국 민항기 불시착不時着’ 사건을 꼽습니다. 그해 5월 5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상하이로 향하던 중국 여객기가 하이재킹을 당해 춘천의 미군 비행장에 불시착했습니다. 이러한 뜻밖의 사건을 정성을 다해 처리하면서 양국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위한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1985년 어뢰정 사건 처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통해 신뢰를 쌓았고 9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한중 양국은 ‘다음 30년’을 향한 출항出港을 앞두고 과거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고사에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한 마리의 생선을 찌는 것과 같이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 진심을 다한다면, 양국 간 신뢰가 쌓이고 이것이 두 나라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와 중국의 시진핑 정부 모두 양국관계의 준칙으로 ‘상호 존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의미가 정치적으로 다르게 사용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만,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하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을 함께 개척해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참고하되 미래를 향해 그 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중 수교 30년을 맞이하고 다음 30년을 여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라고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8월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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