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이정동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前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입력 2021.11.22
황당한 질문이 새로운 세상 열어
기술은 인간의 욕망에 맞춰 발전
즉석사진은 꼬마 궁금증서 착안
노벨상도 최초 질문자에 돌아가
‘죽음의 소멸(Death of death)’. 몇 년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들었던 흥미로운 발표 제목이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연사는 유전자검사 비용이 매해 10분의 1 이하로 급격히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인공장기 생산비용의 급격한 감소 추세 등 여러 자료를 숨 가쁘게 제시했다. 결론인즉슨,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지않은 장래에 모든 인간이 저렴한 비용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맞춤장기를 쉽게 교체해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전망이었다. 휴식시간에 그 발표가 단연 화제였지만, 흥미롭게도 영원히 산다면 연금 문제는 어떻게 될지,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지 등 삶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구호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과학은 발전하고, 산업은 적용하며, 인간은 순응하다.’
기술은 스스로 발전한다는 착각
유토피아 같은 기술의 미래 전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첨단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이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하고, 인간은 원하는 여가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발전의 가속적 추세는 거역할 수 없는 밀물처럼 여겨진다.
자연궤적(natural trajectory)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술의 발전역사를 보면 몇 가지 뚜렷한 경향이 보인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기계화다. 과거 사람의 근육으로 하던 것이 동물의 힘으로 대체됐고, 증기기관과 모터를 거쳐 로봇으로 진화해온 궤적이다. 자동화나 알고리즘화도 또 하나의 궤적이다. 18개월마다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배씩 올라가리라고 예측한 ‘무어(Moor)의 법칙’도 자연궤적의 대표적인 예다.
이런 자연궤적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기술발전의 로드맵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다음 버전의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의장에서 무어의 법칙을 벽에 걸어 놓고 어떻게 2배의 집적도를 달성할 것인지 고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중략